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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주삿바늘 찔려 숨진 아기… 사망진단서에 ‘病死’ 기재 대법 “고의성 인정 안 돼”

법률신문 / 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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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주삿바늘이 깊게 찔려 숨진 6개월 아기의 사망진단서를 ‘병사(病死, 질병으로 죽음)’라고 허위 작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 2명에게 선고됐던 벌금형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의사는 사망진단서 작성 당시까지 드러난 환자의 임상 경과를 고려해 가장 부합하는 사망 원인과 사망의 종류를 자신의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사망진단서에 기재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달 4일 허위 진단서 작성,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대학병원 교수 A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전공의 B 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울산지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2021도15080).
A 씨 등은 2015년 10월 생후 6개월 된 영아의 골수 채취를 담당했다. 해당 영아는 범혈구감소증(혈액 안에 있는 백혈구나 적혈구 따위의 모든 혈구가 정상보다 감소하는 증상) 증세를 보여 골수 검사를 받게 됐다. 전공의 3년 차였던 B 씨는 울고 보채는 영아에게 진정 마취제를 투여하면서 골수 채취를 시도했지만 여러 차례 실패했고, 2년 차 전공의 C 씨 등이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골수를 채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골수 채취 이후 영아는 산소포화도와 생체 활력이 떨어지는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숨졌다.
이후 C 씨가 키 67㎝, 몸무게 9.1㎏ 정도인 영아의 골수를 채취할 때 주삿바늘을 다소 깊게 찔렀고, 이때 바늘이 동맥을 파열시킨 탓에 저혈량 쇼크로 아이가 숨졌다는 사실이 부검을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 A 씨와 B 씨는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때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직접사인을 '호흡 정지'로, 중간 선행사인을 '범혈구감소증'이라고 기재했다. 두 사람은 허위로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은 "피고인들이 동맥 파열로 인한 출혈의 결과를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지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판단된다"며 이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다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의사 등이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당시 기재한 사망 원인이나 종류가 허위인지 또는 의사 등이 그러한 점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는 의료 수준과 사망진단서 작성 현황에 비춰 사망진단서 작성 당시까지 작성자가 진찰한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 및 상태 변화, 시술, 수술 등 진료 경과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며 "특히 부검을 통하지 않고 사망의 의학적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검 결과로써 확인된 최종적 사인이 이보다 앞선 시점에 작성된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망 원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사망진단서의 기재가 객관적으로 진실에 반한다거나 작성자가 그러한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박수연 기자